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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이야기

정수 2003.05.24 01:58 조회 수 : 1626

저희 교회 고등부에 올렸던 글입니다.
ywam에는 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올리지 않은 것 같은데,
오랜만에 refresh하는 것도 좋을 듯 싶어 올려요.

I국이라 함은 주연 누나가 얼마전까지 있었던 나라를 지칭하고,
H선생님이라 함은 지금은 OB가 된 모세형의 매부를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 H 지역에서 개척 및 DTS 교장으로 계시지요. (아직 1기 UDTS 이전이기는 합니다만...)

고등부 대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들을 자세히 설명해놓기도 했네요...

물론 또한 그 때의 설교보다
제가 즐겨 하곤 하는 덕지덕지 덧붙이기가 첨가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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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 나의 second turning point라고 할 수 있는 설교가 있었다.
I국에 계시는 H선생님께서 오셔서 전한 말씀이었고,
너무나 단순 명료해서 그해 여름에 초등부 여름성경학교에서도 전할 수 있었을만한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 말씀이 가지는 강력함은 단연 내 second turning point라고 부를 만큼 강력했다.


--- 1. 포도원 이야기 ---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사 5:1-2a)'

이사야는 노래한다. 한 농부가 있었다. 그 농부는 기름지고 좋은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다. 농부는 그 포도원을 정말로 풍성하게 가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쪽에는 어떻게 어떤 포도나무를 심고, 이쪽에 물을 대면 포도나무가 잘 자랄 것이며, 포도나무가 햇빛을 어떻게 잘 받을지 기쁨에 차서 기대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땅을 일구었다. 땀은 흘렀지만 정말 기대되는 일이었다. 땅에 있는 돌들을 모두 골라내고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루에서 조심스레 묘목을 꺼낸다. 이것은 그가 심혈을 기울여서 저 너머 마을에서 어렵게 구한 정말 좋은 포도나무 묘목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 묘목 자체가 좋은 종자인 것과, 기름진 포도원의 토양 두 가지 좋은 요인으로 인해 탐스러운 포도를 내어놓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들을, 그리고 땅을 다스리고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에게 부여하셨다. 사영리의 첫 구절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이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계획만 가지고 계신가? 우리는 그 계획을 위해서, 그 기준에 올라가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하는가?

이사야가 노래하는 것은, 우리는 이미 극상품 포도나무로 심기워졌다는 것이다. 그냥 포도나무가 아닌 극상품 포도나무 말이다. 그리고 그냥 심은 것도 아니고 땅을 골라 돌을 빼어내고 심었다. 자, 생각해보자. 제때 물만 주면 자연스레 극상품 포도나무에 알맞는 탐스러운 포도가 열릴 것이다. 우리가 맺을 수 있는 가능성, 우리에게 있는 은사와 재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하나님께서 이미 심어놓으신 그 무한히 풍성한 것들, 그것이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당신이 심으신 최선의 것들을 기대하신다. 그리고 그 것은 결코 우리가 이룰 수 없는 무리한 수준의 요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럴 만한 싹을 심어놓으셨다. 우리는 그것을 틔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 2. 포도원의 비극 ---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사 5:2-4)'

포도원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농부는 날마다 와서 포도나무를 기대에 찬 눈으로 지켜본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오랜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 그런데 그 나무를 바라보는 농부는 점점 안색이 굳어져간다. 분명히 가장 좋은 포도나무 종자를 심었는데, 자라는 모양을 보니 가지도 비실비실하고 그렇다. 분명히 그 포도원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도대체 이 이상 어떻게 더 하라는 말인가?

마침내 수확의 철이 다가왔다. 농부는 그래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나무에 다가간다. 그래도 딴에는 열매를 꽤 달고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농부는 그 한 알을 따서 먹어본다. 웬걸, 포도는 달고 물이 많기는 커녕 시고 떫떠름해서 마치 들에 자생하는 포도와 같은 맛이다. 이건 도대체 품종 개량을 해서 최고의 열매를 맺던 그 나무에서 달린 열매라고 할 수 없다. 어떻게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들포도가 나올 수 있는가? 이건 자연재해도 아니다. 농부는 구름에게 명령하여 비를 내리지 말라고 명령할 수도 있고, 때에 맞게 비를 적당히 내리라고 할 수도 있다. 해를 뜨게 할 수도 있고 때에 맞게 지게 할 수도 있다. 땅도 비옥하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우리는 때로는 사단이 속이는 말에 속아넘어간다. '넌 들포도나무야. 네게서 무슨 좋은 열매가 나겠니?' 또는, 우리 스스로 '나는 들포도인걸. 내가 맛있는 포도를 맺는다고?'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얼마나 스스로를 들포도라고 생각했으면, 얼마나 지독히도 그렇게 여겼으면 좋은 열매가 맺힐 수밖에 없는 극상품 포도나무에서 들포도가 났을까?


--- 3. 농부의 분노 ---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사 5:5-6)'

포도를 받아든 농부는 참으로 어이가 없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오죽 답답했으면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들, 유다 사람들에게까지 확인해볼까? 그리고 농부는 분노한다. 그 포도원을 폐하기로 작정한다. 그 울타리를 걷어 들짐승들에게 먹히우게 하고 짓밟히게 하여 포도원은 황폐하게 될 것이다. 그 밭에서는 잡초와 가시가 자랄 것이다.

언젠가 교회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저 상처받았어요', '저 이제 힘들어요', '난 원래 이렇잖아요?'라는 말들이다. 청교도적인 철저한 자기반성과 죄에 대한 성찰은 온데간데없고 관계와 다툼의 전쟁 가운데에서 상처받아 신음하는 부상자들과, 그것들을 싸매고 치료하러 다니는 교역자나 부흥사들 뿐이다. 언제 한 번 내적치유 집회 한 번 하면 서로 부둥켜 안고 울고 불고, 그 기회를 타서 부흥사는 그 둘의 틀어진 관계를 화해시키고, 집회가 끝나면 다른 관계가 틀어지고... 낮아진 자존감으로 쉽게 상처받고 째지고, 기껏 싸매놓은 상처들은 연약한 피부로 인해 곧 다시 터지곤 한다.

하지만 포도원 농부의 반응을 보자. 아니, 포도나무가 들포도 한 번 낼 수 있지 어떻게 그렇다고 포도원을 황폐화시켜버릴까?

우리의 가능성들을 제한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이다. 마치 숨겨놓은 달란트의 비유처럼,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여러 부분들을 가지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아, 네가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래, 그럼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지...'라고 말씀하시는가? 아니다.

이젠 내적 치유를 넘어서서 회개해야 할 때인 것 같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격려하시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잘못할 수 있는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분명히 극상품인 우리를 스스로 들포도로 만드는 것은 죄가 아닌가? 하나님을 진노하게 할만한 죄가 아닌가? 내가 저질렀지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면 죄가 아닌 것인가?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을 혹 이제는 이용하려 드는가?

극상품 포도나무를 들포도로 만드는 것은 농부이신 하나님에 대한 큰 죄이다. 그것은 농부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물 뿐 아니라 자신의 피를 뿌려 키운 농부의 희생을 허탄한 것으로 돌리는 패역한 행위이다.

혹시 나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지 못하고 들포도로 주저앉아있지는 않은가? 상처가 있다면 은혜를 구하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얻고, 또한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고 딛고 일어서라. 혹시 상처를 후 불어가며 더 크게 키우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은 명백한 불순종의 죄이다. 상처를 방패로 삼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이곳 저곳에서 위로와 격려를 구하는 것을 넘어서서 회개해야 할 때이다.


--- 4. 영적전쟁 ---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눅 10:19)'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약 4:7)'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우리에게는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는 권세가 있다. 이 권세는 눅10:19에 기반한다. 이스라엘의 포도나무들이 예수님의 이 자신에 찬 선포를 듣지 못했다면, 우리에게는 '권세를 주었으니'라고 말씀하신 기록된 말씀이 있다.

간혹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강력한 말씀들을 선포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가 있다. 눅10:19를 다시 살펴보자. 그 배경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때는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이전. 성령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권능으로 임하시기 시작하는 것은 오순절 다락방의 사건에서부터이다. 어? 그런데... 전도여행을 떠났던 이 70명의 제자들은 단지 예수님의 이름과 그 선포하심만으로 마귀들에게 승리하고 돌아왔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만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그 말씀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던 그 신비로운 때의 신적 권세가 있는 말씀이며, 또한 이 시간, 우리 세대에 대하여도 그러하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 10:17)'

분명히 하나님은 성경의 기자를 통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영적 전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어? 그런데, 바로 앞에 맥락에 맞지 않는듯한 한 마디가 있다.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 먼저인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먼저인가?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부터가 바로 영적 전쟁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과 형편과 생각과 마음과 감정과 상관 없이 우선 하나님께 순복해야 한다. 그리고 그 후에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극상품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순복하겠는가? 그 말씀을 인정하겠는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겠는가? 그렇다면 잘못된 생각에 대해 대적하라. 나의 생각에 대해서, 내가 잘못 생각하도록 하는 사단에 대해서.

우리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옥에 갇혀 있는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으로 기록되어진 이 구절은 바울의 고백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나를 좌절시키려는 사단의 속삭임이, 또는 그 속삭임에 길들여져 이제는 반복 학습으로 자동반복되어지는 나의 생각이 계속될 때 그것에 대해 대적하고 이 말씀을 선포해보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이 나를 새롭게 빚어가는 능력이, 원동력이 되는 것을 오랜 시간 동안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5. 새 열매 ---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 2:8)'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벧 2:9a)'


내가 맺게 될 극상품 포도는 과연 어떤 수준의 것일까?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또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세우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기를 원하신다. 내 능력을 상관치 말고, 내 어떠함에 상관 없이, 그리고 물론 그렇게 구할 수 있는 사람은 포도원의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서, 무조건 일단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열방을 경영하게 되며, 그것이 땅 끝까지 이르겠다고 말씀하신다.


가끔 우리는 '헌신'이라는 것이 눈물겹고 꾀죄죄하고, 내 능력 다 포기하고 정말 조그맣고 하찮은 것을 평생 하면서 지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시편을 보자. 얼마나 광대한가?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때, 내 삶을 책임져달라고 일단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심으신 극상품 포도나무의 가치를 활성화시키시고 정말 엄청난 열매들을 맺게 하신다.

도저히 한 동네에 내 평생을 바치기가 아까운가? 그렇다면 한 나라를 구해라. 한 나라도 내 삶을 맡기기에는 너무 좁은가? 그렇다면 대륙 전체를 구해라. 하나님께서는 땅을 다스릴만한 지혜와 권위를 인간에게 부여하셨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그런만한 지혜와 능력을 허락하실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과, 하늘에서 이룬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한 영혼의 소중함이 한 나라를 경영하는 것보다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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