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연세 YWAM 계좌번호 : 신한은행 110-293-670952 이미나

오늘 승부를 걸었건만...ㅠㅠ

김희중 2003.06.05 05:21 조회 수 : 1570

제목 : 기적을 필요로 하는 삶
본문 : 행 4장

기적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 이성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놀라운 경험들이 여러분 삶 가운데 있었는가?  yes,  no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되는 사건은 바로 베드로와 요한이 40년동안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고 뛰게 만든 기적이후에 기록된 것이다.  왜 성경의 기적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인가?  성경의 기적은 그냥 문자의 기록으로만 존재할 뿐 더 이상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인가?   왜 오늘 나는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없는가?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 기적이 필요한 상황 속으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어도 적당히 내 힘과 내 노력을 될 수 있는 상황 속으로만 걸어가고, 정말 어려움이 있고, 고난이 있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전적인 은혜가 없이는 안되는 상황은 미연에 알아서 적당히 피해가고 알아서 포기하기 때문이다.
위기가 찾아오면, 넘어야 할 높은 산 앞에 맞딱뜨리면, “아마 하나님 뜻이 아닐거야” “좀 기다리라고 하시는 것 같다.” “꼭 지금이 이길만이 하나님 뜻이겠어? 하나님 뜻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이루어지는 게 아냐” 하면서....     문제 앞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 반응해간다면, 아마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서는 결코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거나, 하나님의 현존하심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다.
문제 앞에서,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때때로 엄청난 두려움과 사방이 막힌 것 같은 막막함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머리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무엇인가?   기도이다.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24)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
문제 앞에 직면하였을 때에,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협 앞에 맞닥뜨렸을 때에, 그들의 자연스럽고 즉각적인 반응은 기도였다.  근심도 토론도 대책마련도 아닌 즉시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 보좌 앞에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24후)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오 : 하나님께서 만유의 주재가 되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우선 고백한다.  진정한 기도는 바로 거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어떤 사건도 사람도 대상도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아래 있음을 선포하고 시인하는 것에서 우리의 기도는 시작되어야 한다.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 그들은 자기들이 당면한 상황을 그냥 상황 자체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과하여서 성경의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상황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황 가운데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알지 않고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문제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28)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
그들은 자기들이 싸울 싸움이 육체에 속한 싸움이 아님을 알았으며, 이 싸움이 나에게 속한 싸움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싸움임을 알고 있었다.  나의 싸움을 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과 하나님의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 그분의 이름을 힘입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 첫 번째 간구는 대적의 공격과 기세를 주께서 막아주시도록 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하여 얼마든지 원수들의 마음을 바꾸시며 녹이실 수 있는 분이시다.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 기도는 결코 패자들의 자기합리화나 궁여지책이 아니다.  기도는 도리어 적극적인 싸움의 한 가운데로 우리를 달려가게 만든다.  기도는 결코 우리를 앉은뱅이로 만들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가 기도할 때, 주께서 우리의 발을 암사슴 발같이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는 것이다.  기도는 우리를 전장의 한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적진을 뛰어넘는 용사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을 기대한다면, 우리는 또한 우리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며, 행동하는 적극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 믿는 자에게 베푸시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도록 간구하고 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기를 결정하고, 증인된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면, 또한 믿는 자에게 약속하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도록 담대하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기적을 필요로 한다.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과 자연적인 결과로는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비로소 생기를 띌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한 만큼의 결과만 기대할 수 있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재미가 어디에 있는가?  물론 우리가 해야 할 몫을 다하고,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최선위에 하나님이 기름부으시고 축복하신다면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놀랍고 영광스럽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런 믿음의 역사를 경험해 보고 싶다.

그들의 간절한 간구를 통하여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 모인 곳이 진동하였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우선 그들의 기도가 하늘 보좌를 진동케 하는 기도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 하나님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기도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뜻대로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은 그냥 무덤덤히 그것을 바라보고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요즘 집에서는 설교준비든 묵상이든 뭘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 조금 책상에 앉아 있으면, 선준이의 “으앙”하는 소리가 들린다.  분명히 아기 엄마가 거실에 있고, 엄마가 알아서 아기를 달랠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울음소리가 나면 자리에 앉아서 그 소리를 무시하고 다른 일을 하기가 너무 어렵다. 아이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샘물처럼 솟아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로 인하여 뜨거워지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 연약하고 허물많은 입술의 기도에 의해 움직이시길 기뻐하신다.  아무리 다른 중요한 일들이 있으셔도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는 그 순간에 하나님은 즉시로 달려오시는 분이신 것이다.   아멘?
  그리고 모인 곳이 진동하였다는 것은 또한 원수의 나라가 요동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할 때에 원수의 나라에는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을 아는가?  모여서 우리를 해하려고 모의하고 있는 그 음침한 동굴에 진도 10 이상의 강진이 일어나서 기둥이 넘어지고, 천장이 무너지고, 원수들이 비명을 지른다는 것을 아는가?  믿거나 말거나 자유지만, 믿음으로 상상하며 기도하고 예배하면 진~~짜 신나고 재미있다. ㅅ ㅅ
마지막으로 모인 곳이 진동하였다는 것은 본문의 기록처럼 모인 모든 무리들의 마음이 진동하였다는 것이다. 무엇 때문에? 성령의 충만한 능력으로,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거룩한 갈망으로~!
세상을 움직이기 원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내 마음이 진동케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이 성령으로 진동케 되고 난 후에야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31)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 성령이 충만한 결과로 나타나는 첫 번째 현상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었다.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가장 중요한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증인되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자로서 내가 믿는 예수를 전하기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 한다면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내가 아직 한 영혼에게도 복음을 전하여서 그 영혼을 주께로 돌아오게 한 적이 없다면, 나는 아직 걸음마 신앙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인 것이다.  다시금 우리 몸은 복음 전도의 열정을 우리 안에 회복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 두 번째 현상은 그들이 하나가 되어지는 것이었다.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하나의 부르심 가운데 위탁되어지는 것,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 가운데 한 지체로 부르셨고, 하나님의 역사와 영광은 공동체를 통해서 흘러나가는 것이다. 공동체 안에 위탁하지 못하고, 공동체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이다.  수 없이 말했지만, 기름부으심은 공동체에 있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ywamer로서 캠퍼스에 있다면, 이 몸 안에 있는 동안에 이 안에 있는 모든 기름부으심을 경험하고 맛보아야 한다.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내가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몸안에서 샅샅이 배워가리라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  예배, 중보기도, 인격적인 관계, 공동체의 하나됨, 섬기는 리더쉽, 열방을 향한 비전 등등    여러분에게 영원히 ywamer가 되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졸업 후에는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가야할 것이다.   그러나 캠퍼스에 있는 동안에 여러분이 ywamer라면 정말 ywamer다운 ywamer가 되라.  파스텔톤의 애매한 색이 아니라, 진한 포스터 칼라의 레디컬한 색깔을 지니라.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 세 번째 현상은 권리포기였다.  마땅히 자기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나를 위해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살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물건과 재물만을 서로 통용하는 차원이 아니다. 내 삶의 좁은 바운더리를 넘어서고, 닫혀진 문을 열어서, 기꺼이 나를 나눠주며 흘려보내는 삶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며 그 십자가의 도에 합당한 삶의 모습으로 변화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리더로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것은 자기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 던지고, 우물에서 뛰쳐나와 샘물처럼 자신을 흘러보내 주는 사람이다.  플로잉은 우리 안에 있는 귀한 전통이다.  그것은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는 열려 있는 삶에 대한 우리의 최소한의 적용이다.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34)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
예수의 부활은 말로만 증거되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이적이 그것을 증명하였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맛보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놀라운 은혜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할 수 있는 것, 그분의 영광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심을 맛볼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놀라운 경험이 우리 인생 중에 있을 수 있겠는가?
큰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머물러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삶을 더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열망,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열망, 하나님을 향한 더 커다란 사랑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나에게 있는 것 중 하나님께 더 내어드릴 만한 것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고민하여, 그것을 기꺼이 주의 발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는 것이다.  마치 향유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 처럼...  내 안에 주 앞에 깨뜨려 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이 여름에 여러분에게 주어진 이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하길 원하는가?  한 한달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돈 모아서 배낭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가?  이 시대 대학생들의 헌신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줄 아는가?  “과외”이다.   1주일에 5시간동안 과외하면 4년 동안이면 1000시간이다.  이 1000시간을 여러분이 어떤 한 영역에 4년 동안 투자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그 영역에 있어서 탁월한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여러분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는 때이다.  모든 사람이 다 한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아무 생각없이 하지 마라.  정말 해야 하는지 주께 여쭈어 보아라.
아니면 열심히 학원다녀서 토익 토플 점수 좀 높여 보려고 하는가?   아님 계절학기 들어서 CD 학점을 AB로 만들어 보려고 하는가?   방학은 放(놓을 방)學이다.  ㅅ ㅅ   평소에 열심히 해라.  남들 놀 때 공부하고, 공부할 때 놀려하지 말고...
CD가 AB가 되어야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용하실 수 있는가?  AB가 없어서가 아니라, 하늘 보좌를 진동케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하나님은 역사하실 수 없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해야 한다.  하지만, 해야 할 때 해야 한다.  이 여름은 분주하고 정신 없이 달려온 우리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는 일에 우리의 삶을 드리기를 소망한다.

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자 하고, 예수의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며,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고자 할 때에는 분명히 박해가 있다. 핍박이 있다. 넘어야 할 산이 있으며, 지불해야 할 댓가가 있다.  그것을 넘어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를 막아서는 문제들은, 우리를 어렵게 하는 세상은 충분히 두려워할 만한 권세가 있는 것이었다.  마치 제자들 앞에 서서 그들을 위협하였던 유대의 관원들처럼...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바로 얼마전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장본인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이 문제 앞에서 두려운 위기 앞에서 그들의 삶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하나님 앞에서” - 이것이 그들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 누구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누구의 음성에 순종할 것인가?  세상이 요구하며 세상이 떠드는 목소리를 따를 것인가?  내 안에 있는 욕망의 음성에 귀 기울일 것인가?  아니면 내 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할 것인가?  내가 내 안에 있는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내 안에 있는 성령은 근심하시고 슬퍼하시며, 점점 내 삶에서 그분이 다스릴 수 있는 영역을 잃어버리시고, 서서히 소멸되어지는 것이다.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 그들은 왜 이 땅에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너무나 명확하고 확실한 부르심을 알고 있었다.  왜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그들을 이 땅에 남겨두셨는지, 그토록 사랑하는 주님을 위해서 이 땅에 남아 할 일이 무엇인지... 바로 증인된 삶을 살아가도록 이 땅에 부르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왜 대학에 있는가?  이 대학에 머무는 동안에 여러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이 여러분에게 정말 가치있는 것이라면, 여러분이 이 여름에 무엇을 해야 하며,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용기도:
1. 문제 앞에 놓여져 있는 사람들 위해서...  주님 지금의 내 삶에 주님의 기적을 보고 싶습니다.
2. 우리의 밭을 팔 수 있도록...  내가 내 배 불리기 위해서 가지고 있었던 나의 계획, 내 생각을 주 앞에 내어 드리자. 36)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 주 앞에 자기의 모든 것을 기꺼이 깨뜨려 드린 사람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이 기록되고 있다.  그는 공동체의 보물이었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를 가져다 주는 사람, 기꺼이 자신의 삶의 문을 열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흘려보내주는 사람. 그가 처음 내어드린 것은 자기에게 있는 밭 하나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의 인생 전체를 받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놀라운 역사의 도구로 삼으신다.  안디옥 교회의 초대 목회자로 최초의 이방교회에 큰 부흥을 가져왔고, 최초의 선교지향적인 교회의 최초의 선교사로서 위대한 선교역사의 큰 획을 그었던 사람, 바로 그가 바나바이다.  마치 소년의 도시락이었던 오병이어가 수천명을 먹였듯이, 내 삶을 내가 들고 있으면 나 한사람의 배만 채우겠지만, 그것을 주께 드리면 주님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놀라운 기적의 삶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