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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 YWAM 계좌번호 : 신한은행 110-293-670952 이미나
정민이가 올린 질문은 두 가지인 것 같다.

1. 콘서트적인 와웸 예배
2. 삶이 변하지 않는 예배

우선,

1. 콘서트적인 와웸 예배

예배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지. 하나님이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측면,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측면. 하지만 두 가지의 공통점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시간이라는거야. 예배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본질이고, 어떤 형태의 예배든 그것이 없으면 예배가 아니고,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배라고 말하는 것은 그 본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해.

이 이야기를 먼저 하는 이유는 - 콘서트적인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 라는 원론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않기 위해서야.

예배의 본질은 동일해야겠지만 그 형태에 있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창조해야하지. 하나님을 어떤 형태로 규정할 수는 없어. 하나님은 어떤 예배의 형식과 어떤 음악으로도 표현될 수 없는 분이야. 때문에 예배곡은 끊임없이 새롭게 갱신되어 왔지. 더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창조성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사용해서 하나님을 예배해야해. 만일 우리가 어떤 정해진 틀에 따라 찬양해야 한다면 우리는 모두 이스라엘 민요를 배워야 할게야. 다행히도 이스라엘 민요는 우리나라 정서에 딱 들어맞긴 하지.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찬양하며 모든 방언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모든 열방과 민족 가운데서 사람들이 나아오는 것, 그것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면에 대한 환상인데, 그 곳에는 놀라운 다양성이 존재하지. 피조물이 도저히 흉내낼 수조차 없는 하나님의 동시성과 다양성은 수많은 언어와 수많은 음악들, 예배 형태들을 가지고 엄청난 수의 민족과 방언이 나아오는 것으로 인해 더욱 높여질거야.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반대의 아쉬움을 말할 수 있겠지. 왜 우리는 더 다양한 것을 시도하지 못하는가.

제주 열방대학에는 열방예배라는게 있다고 하더라. 매주 월요일마다 그 곳에 있는 국제와웸 사람들이 각국의 언어와 춤과 풍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지. 우리 나라도 국악으로 예배하는 시간이라고 하더라. 예전에 나왔던 예수전도단 10집 '거룩한 성전'도 정말 훌륭한 앨범이었는데 빛을 못봤지. 들으면 들을수록 감칠맛이 나는 명반이었는데...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서구적인 영성에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음악이라는 것에 대해서 오히려 비판적 의식을 가질 수 있겠지. 반대로 안전한(?) 예전으로 돌아가자는건 스스로를 너무 제한하는 일이지. 또한 달란트의 비유처럼 하나님은 주신 것을 활용하고 발전시키시기를 원하시고 말이야.


더욱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오히려 창조적이고 고무적인 일인게야.


2. 삶이 변하지 않는 예배

예배는 성화의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해. 와웸에서 이야기하는 의미로서의 '예배'는 더욱 그렇지. 와웸에서의 예배는 '경배'의 의미가 강해.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고 열망하는거지. 그런 예배 속에서 예배자는 예배의 대상-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인식해. 하나님의 실존-비록 수건에 싸인 것 같은-을 인지할 때에야 비로소 예배자가 살기 원하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있는거지.

기도와 말씀과 예배(경배), 셋 다 중요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실존을 집중적이고 주기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예배의 자리에서야. 예배 안에서 예배자는 '구도'와 '노력'이 아닌 '닮아감'의 순간을 경험하지.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예배 안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라고 누누히 이야기하는거야.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예배는 물론 하나님께서 받으실지 모르지만, 내가 하나님의 임재 속에 나아가서 그의 실존을 체험하고 그 분이 어떤 분이신가를 누리고 거룩하게 닮아가는 경험이 없는 예배였다는거지.

그러한 예배를 드리는 사람과 드리지 않는 사람의 삶에서는 정말로 큰 차이가 난다. (그런 면에서 요즘 예배 전에 중보기도가 점점 엷어지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야. 캠퍼스모임 전에, 캠퍼스워쉽 전에 물론 함께 모여서 모임하고 같이 출발하지만,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혼자라도 먼저 와서 기도하면서 준비하는 모습이 아쉽다. 내가 1-2학년때는 종종 30분 전에 캠퍼스워쉽 장소에 가서 기도하곤 했는데.)

때문에 최고의 경배를 드리는 사람만이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다. 예배만 너무 아름답지는 않도록, 내 삶보다 예배가 더욱 아름답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하겠지. 하지만 삶이 예배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가 내 삶을 이끌어가는거야. 하나님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 수 없는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겠지.

'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할 계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그 개인의 문제이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건 아니지만, 각 개인이 예배에서 반응하는 것이나 배우는 것, 듣는 것의 차이에 따라 그의 삶이 달라지게 되는거지. 하지만 예배 안에서 삶이 변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전체에 대해 비판적으로 말하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왠지 모르게 거부감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는 내 내면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외로 정말 어이없을정도로 단순한 동기가 그런 입장을 취하게 할 수도 있거든.


치열하게 고민하고 깊이 묻고 직접 답을 찾아가렴.
사랑하고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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