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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파병 결의안이 통과되었나보군요.

정수 2003.10.17 15:19 조회 수 : 1879

얼핏 들은거라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오늘 UN에서 결의안이 통과되고,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발빠르게 대처한 듯 하네요.
씁쓸합니다...

얼마 전 학교에서 파병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었죠.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파병 반대가 70%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구나 하고 지나가려는데, 투표 인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1500여명... 물론 저도 서명은 하지 않아 할 말은 없습니다만, 학교 밖에서라도 서명할 기회가 되면 하고 싶었는데...


지난주 바이어하우스 교수님 수업에서 어떤 자매분이 신문 하나를 소개하셨습니다. 한 기사 한 기사를 기도하면서 쓰시는, 투명하고 신앙적인 신문이라고. '미래한국'. 흥미가 있어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하지만 곧 실망했습니다. 다른 것들이야 국민일보 등 처럼 약간 풋풋한 티가 나는 내용들이었는데, 이라크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일말의 재고도 없이 한기총 목소리를 내고 있더군요. 신문 한 기사 한 기사를 바라보며 Framing Theory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파병을 찬성하는 기사 옆에는 환호하는 군인들(과연 이런 군인들이 어디 있을지...)의 사진이 걸려있고, 노무현 대통령의 파병 찬성 의견 옆에는 그의 군대 복무 시절 사진이 걸려있고... 관련 기사에는 '청년 네티즌, 파병 찬성으로 급선회'라는 기사가 걸려있고... 차라리 뉴스앤조이가 더 신앙적일까요.

그냥 걱정만 마음 속에 담아두려 했는데, 그 미래한국이란 신문의 기사가 너무 화나게 해서 이렇게 글을 쓰게 되네요. 기도하고 쓰는 신문이라는데에 우리 나라의 위상이니 경제적 여건이니... 물론 교계 신문이 아니라 기독교 가치관을 가진 일반 신문으로서 설명은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나라가 어찌 되어가려는지...
진정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려는지...
이 땅에 들어와있는 아랍 노동자들과 교환학생들과 아랍을 향해 선교를 준비하는 선교사 지망생들과 현지에 이미 나가있는 해외 근로자들과 사업가들과, 마지막 선교지 무슬림권이라고 소망을 품고 현지에 선교사로 나가있는 분들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일겁니다.

중앙아시아와 중동권에서 마지막 남은 보루라고, 911 테러때도 웨스턴들은 모두 짐 싸들고 본국으로 도망(?)갈 때, 유일하게 남아 현지인들의 친구라는 신뢰를 얻었던 한국 선교사들에 대한 신뢰를 포함해서, 그들과 문화가 같고 다른 민족을 침략한 역사가 거의 없고(베트남전에 대해선...;;), 여러 이점으로 중동 선교에는 한국이 하나님의 역사에서 쓰임받을 것이라고 세계 선교적 관점에서 많이들 언급되어 왔는데, 이 나라가 진정 하나님의 촛대를 옮기려고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 민족을 어떻게 다루실지,
정말 명분대로 선한 파병으로 화할 수 있을지...
앞을 알 수가 없군요....


아이러니하게도 며칠 후인 26일부터 무슬림을 위한 기도가 시작됩니다.
가는 군대에 앞서 그들, 무슬림들을 '위해' 기도해야겠군요.
그들이 잔혹한 전쟁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그들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도록,

물론 우리 나라 파병 이전에도 그들에게는 이미 그런 전쟁이 계속되어왔겠지만...
우리에게는 파병이 특별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이미 미군에 대하여서 일상이었겠지만...


TV를 통해 세상을 보듯, 먼 세계의 뉴스일뿐이라고 속이는, 두꺼운 브라움관 속에 갖혀있는 '나'의 모습도 봅니다. 하지만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정말 전적으로 옳은 편이 있는 것이지도 도저히 모르겠는 내 모습도 보구요.

제발 나를 깨워주세요.
YWAM은 해외선교단체, 열방을 품고 - 아버지의 안타까운 마음과,
불의한 것들에 대한 거룩한 분노와, 심판에 대한 소망을 품고 - 있는 단체인데,
나를 자꾸 이 몸의 틀 속에 갖히게 하는,
나를 자꾸 이 캠퍼스의 틀 속에 갖히게 하는,
내 생각보다 훨씬 큰 전세계적 하나님의 교회를 보지 못하게 하는,
나를 좀 깨워주세요.
몇주 전 정말 오랜만에 열방을 품고 중보할 때
얼마나 가슴이 뛰던지.. 하나님의 그 가슴떨리는 영광이 열방 중에 선포되는 것을 인해 내 지경이 넓어지는 것을 얼마나 오랜만에 경험했던지...
이런 마음을 품고 같이 기도할 사람은 없나요?
내 문제, 지금 하고 있는 하스피로서 이 몸의 문제, 이 캠퍼스의 문제를 넘어서서
지금 피부로, 살로까지 고통당하고 있는, 억압받고 압제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들을 위해서 같이 기도할 사람은 없나요?
언제부터 우리의 기도가 안으로 굽기 시작했는지,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그 연락된 모든 지체가 동시에 아픔을 느끼는
유기적인 그리스도의 몸에서 언제 고통의 감각을 잃어버렸는지...
우리 몸에서 사역하고 있는 사역자들도 없지 않은데 그들과 연락하며
계속 필드의 감각을 잃지 않고, 매년 전도여행때마다 직접 해외로 나가
그 상황들을 피부로 느끼고 기도하고 그 땅을 위해 우는 일들이
언제부터 그치기 시작했는지...
핍박받는 현지의 소식 공급이 언제부터 끊어졌는지...
예전엔 금모에서도 현지 기도제목들이 종종 부탁되곤 했지요.
내 밖을 바라보지 않으면, 내 생활을 넘고 내 가정을 넘고 내 민족을 넘고
내 나라를 넘지 않으면, 그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할텐데...
하나님은 infinite but also personal한 분인데, 우리는 너무 personal한 하나님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고 전쟁으로 인해 죽어가는 사람들, 복음이 없어 그 아래에서도 안정되지 못하고 하나님을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에도 복음이 필요한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이나, 교회를 건축해야 한다는 말이나, 비효율적인 낭비라는 말이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변명인 것을...

전쟁... 전쟁이라는 것의 사진, 증언들을 하나 하나 접하게 되면서, 그것이 진정 인간의 처참한 본성의 버라이어티 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리 명분 있는 전쟁일지라도 그 속에서 전투에 임하게 되면, 생명에 대한 잔혹함과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추악함들, 사탄적 요소들이 튀어나올수밖에 없는 것을... 사랑으로서 전쟁을 한다는건 불가능한 것을... 전쟁은 평화를 수호(?)하는자나 수혜(?)받는자나 어떤 자이건 분노로 motivate한다는 것을...

이 시점에서 다시 본회퍼의 일생을 기억합니다.
동독 출신 신학자였던, 명망있는 신학자였고, 독일 전쟁(1차 였던가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미국의 한 신학교에 초청교수로 있었지만, 조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의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조국에서 바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모두 피난을 나오는데 홀로 거슬러 본국으로 귀국해 결국에는 처형당한 사람. 물론 그가 한 히틀러 암살 계획, 그 방법에 대해서는 더 묻고 생각해봐야겠지만...

언젠가는 그와 같은 상황이 닥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 땅에 전쟁이 난다면, 정말 하나님이 부르시는, 또는 바울과 같이 신앙 양심이 부르는 곳에 있을 수 있을까...

지금은... 지금은...

그래도 여전히 나에겐 해야 할 공부가 있고,
내야 할 숙제(^^;;;)가 있고,
평가받을 학점이 있고,
섬기고 있는 부서가 있고...

너무 모순적인 상황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음은 뜨거워져 가는데,
생활은, 삶의 지경은 여전히 일상적인...

데이빗 브레이너드가 그 선교적 열정이 커져갈수록, 더욱 심한 우울증 현상을 보인 것이 이해가 갑니다. 하루 울고 하루 웃고, 아버지의 깊은 임재에 안정하고 사람들을 인하여 울고, 자신의 죄를 보며 울고...

짐 앨리엇이 그 마음에 열정을 견디다 못해 안타까운 분노를 터뜨리던 것이 이해가 갑니다. 그러면서도 지금껏 단 한 명도 전도를 못했다고 낙심하는 모습이 또한 이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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