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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학교 1일차 전체강의

정수 2003.10.27 20:21 조회 수 : 1592

예배학교 첫째날 - 김준환 간사님

오늘은 우리가 예배할 때에 실제적으로 고민하는 것들, 우리 삶 속에서 바뀌어야 할것들, 예배하면서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것들에 대해서 나눔.




제목 : 예배와 부흥



예배의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서 나누고 개관하는 시간.

여러분들 볼수록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아요. 얼굴에 주님의 영광이 비취는 사람 같아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계시된다는 것. 하나님을 그렇게 알도록 창조하심. 만물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도록 창조하심.

하나님을 앎


우리 안에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 아버지와 아들의 친밀한 이미지.
예배란 무엇인가? 예배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과정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이다.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선입견에 의해 하나님의 이미지가 어그러져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죽도록 예배하는데 도무지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지 않고 두렵고 답답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있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머리로)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경험하는 하나님은 과연 어떤 하나님인가?
공포의 하나님? 두려운 하나님? 찬양인도 하다가 박자 틀리거나 가사 틀리면 짜증내고 그 예배는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
예배의 깊이라고 말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깊이 예배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깊어지는 것이다. 진리 가운데 거할 때, 음성을 듣는 가운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질 때 더욱 예배가 깊어진다. 예배는 어떤 스킬이 아니다. 때문에 예배는 삶의 경건도 같이 가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같이 가야 한다. 예배는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면 예배가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의 삶 전체가 예배가 되는 것이다. 신약 성경에서도 너희의 삶 전체를 산 제사 - 예배로 드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예배하는 것이다.

인격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인격과 인격이 부딪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닌.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가 고백되어야 한다. 나의 삶 속에서 부딪치는, 접촉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경에서 안다(야다)라고 말할 때는, 만남, 인격적 앎을 말한다. 정보가 아니라, 나와 만난 인격적 접촉으로부터의 앎.

내가 만나봤는데,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용서가, 사랑이 이런 것이더라. 이런 것들이우리의 삶을 깊이있게 한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라는 폭을 좁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금요모임, 캠퍼스 모임, 주일 예배, 모임 시간 등으로 한정하지 말라. 오히려 성경은 예배를 시간과 공간으로 한정짓는 것을 깨뜨렸다. 예수님께서도 수가성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여기냐 저기냐, 언제냐 하는 것을 말하지 말라. 너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삶에 전반적으로 드려지는 것이 예배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를 삶에서 동떨어진 어떤것으로 간주할 때, 삶 따로 예배 따로 간주할 때, 기름부음이 사라지게 된다. 어떻게나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이 될 것인가?
하나님을 알아갈 것인가? 모든 시간 속에 예배한다는 것은, 모든 시간 속에서 하나님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예배는 worship이다. "가치 있게 된 상태"를 말한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드리는 상태. 지금 내 삶 속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바로 예배의 대상인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이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고, 돈이면 돈을 예배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많이 재정을 드리고 신경을 쓰고 시간을내는 것이 어떤 영역인가? 지금 내가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 영역을 하나님의 영역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하나님, 내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되소서!"라고고백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이다.
하나님이 내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된 상태. 그것이 바로 예배이다. 가치 있게 된 상태, 그것은 예배 시간과 같은 특정한 시간이 아니라 삶 전체를 말한다. 단지 주일 예배 시간이 하나님이 내게 가장 가치 있게 된 상태일 뿐, 그 외의 시간은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사람들의 분위기를 잡는 준비 찬양을 하는 에배인도자가 될 수 있다. 본찬양을 준비하는 준비 찬양 예배인도자가 되고 싶은가? 기름부으심이 없는 찬양인도를할 수도 있다.

기름부으심


그러면, 기름부으심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이 나타나는 것,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을 온 회중이 알게 되는 것이다. 그가 섰을 때, 하나님이 그를 쓰시고 있다는 것을 회중이 객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이
회중에게 부어지고, 하나님이 회중에게 역사하시는 것이 기름부으심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직분을 가질 수는 있지만, 기름부으심은 없을 수 있다. 리더를 할수 있지만, 기름부으심이 없을 수도 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이 먼저 기름을 부으신 후에 직분에 올라갔다. 선지자, 왕 등이 그러한 예이다. 위치가 아니라, 기름부으심이 먼저라는 것이다.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느냐.
나의 삶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드러나는 것.
하나님이 나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느냐 하지 않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나님이함께 하셔야만 역사가 일어난다. 삶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예배가 그 때에야 일어나는 것이다. 기름부으심을 사모하라. "하나님, 내게 기름부어 주시옵소서."

문제는, 내 삶 속에 기름부으심이 있는지 없는지도 감각하지 못하고, 권위와 자리로서만 무리를 이끌어가고 분위기를 이끌어가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나누어 부어지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찬양 인도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타내는 중요한 통로이다. 찬양인도자가기름부으심이 있어야 한다. 찬양인도자에게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고, 참된 자유가 나타난다.

말씀을 전할 때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똑같은 말씀을 전해도 어떤 사람은 말씀속에 기름부으심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없을 수 있다. 말씀을 전할 때의 요소는, 그가단지 이론이 아닌, 경험한 말씀을 나누는가 아닌가에 좌우된다. 말씀이 그의 삶 속에
경험되었는가, 그리고 그 경험한 하나님이 말씀 속에 드러나는가에 좌우된다. 그렇다면, 예배의 기름부으심이란 맥락에서는,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이 예배인도에 드러나는 것이다. 자기가 만난 하나님이 예배인도에 역사하시는 것이다. 다른 말로, 예배인도자는 자기가 경험한 만큼만 회중에게 하나님을 계시할 수 있는 것이다. (찬양 인도자 입장에서는. 예배에 각각 나아가는 회중의 입장에서는 또 다른 얘기) 모세는, '당신을 계시하소서'라고 하나님께 말한다. 나에게 계시되지 않은 어떤 것도 다른 사람에게 계시할 수 없다. 따라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다른 말로 표현하면 "기름부으심"이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경험한다'.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이 예배 가운데 나타난다. 내가 경험한 예배의 깊이만큼 회중을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집에서 홀로, 개인 예배를 할 때 하나님을 만나는 만큼 하나님을 계시하시도록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회중에게 흘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이 부은 바 되어야 한다. 그 마음이 부어져서, 흘러가야 한다. 그 깊은 임재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것이 예배에서 흘러가야 한다.

깨어진 마음


그래서 또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핵심 감정을 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감각해서, 하나님의 핵심 감각이 예배를 통해 흘러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핵심 감정,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게 부어진 바 될 것인가? 하나님이 누구에게 자기의 마음을 보이시고 부으시는가?

하나님이 자기의 마음을 부으시는 '그 한 사람'. 깨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부으신다. 예배의 기름부으심의 핵심은 "깨어진 마음"이다. 얼마나깨어졌는가에 따라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기름부으심이 넘쳐 흐르는 것이다.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산산조각이 났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냐 안쓰시냐는 우리의이론적인 스킬 차원과는 다른 것이다. 물론 찬양인도를 하기 위해 섰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실 수 있지만, 근본적인 것은 깨어진 마음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받을만한 그릇인가? 그 그릇은 깨어진 마음이다. 코드가 맞아야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코드가 맞아야 하는데, 그것이 깨어진 마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은혜를 부으시는 통로도 깨어진 마음이다.

깨어진 마음이란 무엇인가? 오직 주님 한 분 만을 갈구하는 것. 오직 주님이 채우시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갈급한 마음. 그것이 바로 깨어진 마음이다. 내 인생에 주님밖에 없다. 목마른 사슴이 헐떡이며 시냇물을 찾듯 하나님을 찾는다.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것. 하나님에 대한 긍휼, 간절함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것, 그럴 때에 마음이 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높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 안에 하나님은 깨어진 마음을 찾으신다. 완전히 부서진 마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마음. 그러나 이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내 마음이 깨어지는 대가 지불을 하라.

우리의 마음이 깨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은 쉽게 깨어지는가? 절대 쉽게 안깨진다. 우리의 마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좀처럼 나의 마음을 깨뜨려서 주님만으로 나의 안정감을 삼는게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쓰시는 방법은, "고난". 고난을 통과한 사람보다 아름다운 사람은 없다. 고난을 피해 갈 수는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신 사람 중에 고난을 지나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의 삶 속에 고난이 있는가?

왜 고난이 우리를 깨뜨리는가? 우리가 교만하기 때문이다. 고난이 아니면 우리의 교만이 좀처럼 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고난을 사용하신다. 직접적으로 불편하기
전에는 우리는 절대로 안변한다. 모든 것이 원만할 때에는 절대로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모든 것을 끊으실 때에야, 그제서야 비로소 정말 말 그대로 죽을 것 같기 때문에포기하고 겸손해지는 것이다.

성숙해진다는 것은, 항상 나의 삶이 거룩하고 겸손하다는 것이 아니라, 고난이나 시련이왔을 때, 빨리 나의 의지, 나의 무언가를 포기하고 겸손해지는 것이다.

시편도, 대부분이, '하나님 좀 도와주세요', 대적에게 막히고 쫓기고, 그런 내용이지않은가? 그 때, 다윗에게는 완전히 하나님밖에 없었다. 그러나 왕이 되었을 때, 그는밧세바를 강간하고 우리야를 죽이게 된다. 어느 순간 그의 깨어진 마음을 상실해버리는 것이다. 느슨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겸손케 하기위해서 아들에게 쫓겨나게 하신다. 그제서야 그는 아주 겸손해진다. 성에서 쫓겨난 그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그냥 놔두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다루시도록 자신을드린다. 하나님은 그를 다루신다. 그런 일들을 겪은 이후, 다윗이 늙어서 어린 여종에게 시중을 받아야만 할 때에도, 식어가는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동침하라는 신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절대로 동침하지 않는다.

깨어진 마음은, 우리 안에 있는 상함의 흔적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눌렀던 상처가 남는 것이다. 그러나 쓴 뿌리로 남는, 불행한 상처가 아니라, 기억되는 상처이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낮추셨다, 그때에 나를 만나셨다 하는 상처이다. 하나님과 씨름하였던 야곱의 상처를 기억하라.

내가 경험했던 어떤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들의 삶이 경건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왜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름부으시고 함께 하시는 표징이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깨달은 것은, 그들의 인생 속에 하나님이 그들을 아주 심하게 다루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흔적이 너무나 깊게 강하게 남아 있어서, 지금은 그들의 삶이 좀 엉망일지라도,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여전히 흘러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핵심 감정이 흘러나오시는 것이다.

훌륭한 찬양인도자 밥 피츠의 한 일화가 있다. 아주 오래 전 그가 아주 젊었을 때, 어떤 자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범죄한 때가 있었다. 그에게는 기름부음이 끊어졌고, 모든 소망이 끊어졌다. 소위 잘나가던 예배인도자였지만 모든 것을 잃고 철저히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을 때, 당시 YWAM에 있었던 그는 스탭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시작하고, 공동체에, 몸에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처절한 마음으로 방 안에 홀로 주저앉아있을 때,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갑자기 그에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문득 지은 곡이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이다.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있는가?

내가 원하는 어떤 것도 성취되지 않았을 때, 그때에라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경험. 기도하면 기도할 수록 가정이 어려워지고, 원수의 장난처럼, 더 나빠져가는 상황. 주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나의 삶에, 내가 원하고 바라던 어떤 것도 내게 주시지 않아도, 하나님만 내 곁에 계시면 내가 만족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가? 욥은 말한다. '내가 전에는 귀로만 듣더니, 이제는 보았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삶. 그것이 바로 예배자,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이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하는 경험이 있는 예배자.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기름부으시는 삶을 원한다면,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도록 기도하라.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기를 소원하라. 내 삶에 하나님에 대한 깊은깨어짐의 상처가 내게 있기를 기도하라.

깨어진 마음은 자기연민과 다르다. 고난 속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자기연민이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시고 다루시도록 나를 두는 것이다. 진정한 고난은, 나자신의 이기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진정한 고난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소망을 발견하는 것,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고난의 시간을 통해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랑하고 만족하게 되는 것을 소망하라.

모세 역시 꿈 많은 청년이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 속에서 존귀케 되시기 위하여 다루셔야 했다. 30년동안 양 치는 목자로서 살게 되고 그는 좌절하게 되었다. 열정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 하나님이 그를 통해 역사하시겠다고 말할 때, 그는 '나는 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당신은 나를 쓸 수 없다'라고 말한 것이다. 그 안에는 분노가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완전히 사그러진 열정과 깊은 상처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일으키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해낸다. 이제 모세에게 있어 이스라엘 백성은 전부였다. 그러나 그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되는가?
우상숭배하고 하나님 앞에서 무너져갔다. 모세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모세에게 있었던 것들이 다시금 모두 철저히 무너진 것이다. 모세는 절규한다. '차라리 내 이름을생명책에서 지워서라도 이들을 구원하소서.'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의 일생의 소망이었다.

그 실패를 통해 모세는 소중한 것을 배우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으로 가득차있던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다시 두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진정한 유업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 이 백성을 당신의 백성으로 여기시옵소서. 그리고 당신을 나에게 계시하시옵소서' 그가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간 것이다. 가나안 반대편 언덕에 서서 백성을 바라보게 된다. 그 모든 시간들을 통해 깨달은 것은, 그의 진정한 기업은 하나님이라는 것.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후손이 별처럼 많을 것이다.'라고 언약을 맺으셨다. 그러나 곧 이어진 이삭을 바치라는 말. 하나님께서 비젼을 선포하실 때는 아주 멋지다. 뭔가 예배를 깊이 드리고 약속하시면 마음이 좋다가도, 바깥으로 한 걸음만 나아가도 낙담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위대한 비젼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사실인 것이다. 수많은 후손의 약속이 있지만 당장 눈 앞에는 이삭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때문에 그 당시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이 그의전부였다. 그러나 그 이삭을 바치라고 하는 날,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 올라 그 이삭을 하나님께 바친다. 하나님은 그제서야 아브라함에게서 믿음을 보셨다고 말하신다.그 이전에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 말의 뜻은, 그가 이삭을 드리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그의 내면 안에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행하셨다는 것이다. 이삭을 데려가실지라도, 하나님 그 분으로 만족한다는 것. 아브라함은 그의 인생의 진정한 유업은 하나님 한분 뿐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삶의 열매도, 어떤 것도 우리의 유업의 안정감이 될 수 없다. 오직 나의 유업은 예수그리스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찬양인도자가, 내면으로부터 기름부음 있는 찬양인도자가 될 것이다.



* 적용
1. 깨어진 마음을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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